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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폰을 보면 아이패드가 보인다.
아이폰의 출시는 기존 통신회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통신 기능이 주, 부가 기능이 그 뒤를 잇던 기존 휴대폰들과 달리 아이폰은 컴퓨터가 가진 여러 가지 기능에 통신 기능을 더했기 때문입니다. 아이폰의 매출량이 수직으로 상승하자 기존 통신회사들은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 보지만 아이폰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는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IT회사인 구글에서 선보이는 '안드로이드'가 노키아, 소니에릭슨 같은 기존의 통신 회사들이 내놓는 제품보다 더 주목받는 상황이지요.
아이폰은 휴대전화 기능이 있는 컴퓨터입니다. 컴퓨터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여 그 기능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애플은 아이폰용 소프트웨어의 다양화와 활성화를 위해 앱스토어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쉽게 배포할 수 있게 하고 그 수익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돌려주고 있습니다. 아이폰의 소프트웨어가 독창적이고 다양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그런데 과연 PC에서도 이런 게 가능한데 굳이 아이폰이 하나 더 필요할까요?
아이폰은 들고 다닙니다! 그래서 PC에서는 별로 필요하지 않은 소프트웨어들이 아이폰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 될 수 있답니다. 예를 들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버스의 도착시각을 알려주는 소프트웨어가 그렇겠지요. 아이폰의 GPS 기능은 이런 소프트웨어들을 더욱 빛나게 해 줍니다. 또, 아이폰에는 이런 소프트웨어도 있습니다. 노래방에서 곡 번호를 쉽게 검색해주는 소프트웨어! 이러한 소프트웨어들은 '들고 다니는' 아이폰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프트웨어들이지요.
아침에 일어나 날씨를 확인하고, 버스 도착시각을 확인해 집을 나서고, 언제 어디서든지 인터넷에 접속해 뉴스를 확인하고, 책을 보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이렇게 아이폰은 사람들의 모바일 라이프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2. 아이패드! 너와 나의 커뮤니케이션
그렇다면 아이패드는 어떨까요? 아이패드가 아이폰의 확장판이라는 생각에는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아마 아이폰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아이폰 사용자들을 쉽게 흡수할 수 있고 오가며 아이폰을 한 번이라도 만져 보았던 사람에게도 큰 거부 반응을 주지 않겠지요. 탁월한 결정이라고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아이패드의 크기와 입력방식입니다. 아이폰은 그 크기와 휴대전화 기능 때문에 개인적이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아이패드는 그렇지 않지요. 즉 아이패드는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아이패드가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회사 근처에는 직원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미용실이 있답니다. 이곳에서는 아이폰에 저장된 사진을 손님들과 함께 보며 헤어 스타일을 결정하곤 하는데요, 다른 미용실에서 각종 잡지 사진 스크랩을 보면서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지요. 제가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폰이 조금만 더 컸다면 훨씬 수월한 커뮤니케이션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패드는 이렇게 상대방과 의사 결정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에서는 어떨까요? 메뉴판 대신 아이패드가 손님들에게 쥐어지고 손님들은 메뉴에 대한 훨씬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며 주문할 수 있겠지요. 길거리에서 설문조사를 하는 것은 어떨까요? 설문지 대신 아이패드를 통해 설문을 받는다면 분류작업 및 통계작업도 훨씬 수월해지겠네요. 요즘은 보험설계사나 세일즈맨들이 모두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고객들에게 상품을 설명하지만, 앞으로는 모두 아이패드로 바뀔 수도 있겠어요.
게다가 아이폰에도 적용된 터치패드 방식은 그리 새로울 게 없어 보이지만 아이패드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더욱 빛나게 할 것입니다. 키보드나 마우스를 통한 2차 입력방식에서 벗어나 손가락으로 직접 터치하는 1차 입력 방식은 그 아날로그적 느낌 때문에 상대방과의 감성적 교류를 도와주기 때문이죠.
아이패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많습니다. 그들 주장의 요지는 기존의 노트북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지요. 그들의 방식대로 따진다면 아이폰도 기존의 휴대전화와는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살아남은 제품들의 정석 아닌가요? 아이폰을 통해 모바일 철학을 인정받은 애플의 신제품 역시 IT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제품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space 공감'과 '라라라-이 프로그램은 제목과 진행자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를 통해 이제 왠만한 사람은 다 알아버린 것 같은 그녀. 꼭꼭 숨겨두었다 그리운 날에 한 곡, 그 카타르시스는 이제 예전 같지는 않겠지요. '메아리 우체부 삼아 편지 한통을'은 작년 가을에 나왔다는데, 겨울이 지나 봄이 다 와서야 앨범을 듣네요. 맑은 음색으로 시와 같은 노랫말을 토해내는 것이 너무 좋답니다. 노래 가듣 묻어나는 그 신비스러움이 좋아요. '고백한적도 없는데 넌 미리 거절을 하고', '오다가다 입 싼 바람이 내소식을 전하거든'... 그래 이게 노랫말이지...
그냥 접으려니 아쉬워 'space 공감'에서 엄인호와 불러냈던 '아쉬움'을 동봉합니다. 머리에 꽂은 꽃은 어색함 대신 어울림.

대부분의 동·식물은 열악한 겨울 환경에 적응하려 효율적인 방어책을 찾는다. 많은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이유가, 나무들이 낙엽을 떨어트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이들은 봄이 되면 겨우내 아껴 두었던 에너지를 순식간에 분출하며 지구를 온통 활기로 뒤덮는다. 인간은 그들이 만들어 내는 초록의 향연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현대인들에게 봄을 알리는 가장 큰 소식은 높은 빌딩을 뚫고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일 것이다. 겨울 동안 낮아진 태양이 점점 높아지면서 사무실 창문을 뚫고 모니터를 가리면 비로소 봄의 시작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봄을 느낀다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우주 변화 원리에 대한 이해다. 기울어진 자전축과 공전으로 비롯된 태양 고도 변화는 봄·여름·가을·겨울을 만들어 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은 이러한 우주 변화를 느끼고 있음을 의미한다. 거대한 자연을 인식하고 그것의 일부분으로써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둘째, 새롭게 시작되는 사계절, 앞으로 펼쳐진 희망적인 계절에 대한 설렘이다. 지구 상의 모든 유기체는 이 캠페인의 참가자다. 겨울잠을 깨고 나온 개구리는 사랑을 찾아 울어대고, 도로 옆 플라타너스는 또다시 거대한 초록빛 잎사귀를 싹 띄워 낸다.
나 역시 새로운 봄에 대한 설레임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희망'은 현실적으로 변하지만 그만큼 실현가능성은 커진다. 이러한 성취를 통해 좀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다. 얼굴 위로 쏟아지는 얇은 햇살을 느끼며 나의 소소한 희망을 되새기는 것이 나는 좋다. 봄이 좋다.

어제 강남 일대에서 예고편 격인 퍼포먼스를 벌였던 강의석이 결국 건군 60주년 기념 시가행진을 가로막았다. 올해 독일에서 도입한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비롯하여 유효사거리 10㎞의 국산 단거리 지대공미사일 천마와 자주대공포인 비호, 방공무기인 신궁, 분당 2000발 이상의 사격이 가능한 자주발칸포에 이어 실전 배치를 앞둔 차기 보병장갑차(K21)와 차기 흑표전차(XK2)를 비롯해 국군이 운용하고 있는 각종 장갑차와 전차의 행렬을 가로 막은 것이다. 그것도 올 누드에 종이총을 들고 말이다.
그의 행동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 씹어대는 강의석 개인적인 문제들은 중요하지 않다. 고추를 달랑 내 놓고 '대한민국의 위용'인 전차 앞을 가로막은 모습이 당신들이 보기에 심히 불쾌해 보이겠지만, 극적인 대비를 통해 메시지 전달의 효과를 노리고자 올 누드로 탱크 앞을 가로막은 그의 발상은 유명 아티스트의 것 이상이다. 게다가 바주카포를 들고 나타난 것도 아니고 종이쪼가리 기관다 총을 들고 나타나 자칫 긴장 국면으로 맞닿을 수 있던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승화시켰으니 이만하면 브라보와 함께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고찰을 해야 되지 않겠나?
군대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5만여 명의 병력과 일본군이 두고 간 99식 소총 등 재래식 병기를 기반으로 탄생한 국군은 6.25전쟁과 휴전 뒤에도 계속된 북한의 도발, 베트남전 참전, 무장간첩, 서해교전 등 온갖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정예 68만 대군으로 성장해 국방비 지출 규모에서도 세계 9위인 명실상공 선진 정예 강군이 되었다.
하지만 빈번히 발생되는 군대 인권 문제와 의문사 문제, 막대히 지출되는 국방비로 인해 상대적으로 예산 편성이 어려운 사회 복지와 교육에 대한 문제, 베트남, 이라크 파병과 같이 대의 명분이 뚜렷하지 않은 참전 등등 강군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문제점들이 발생되는게 사실이다.
군대 존립이 국가의 위상과 국방력 강화로 인하여 보장되어질 평화를 위해서라는 이유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국가의 위상은 단지 국방력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 보다는 경제력, 사회보장, 국민의 의식 수준 등등이 국가의 위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우리가 교내 총격이 난무하는 미국을 부러워 하는 것 보다는 학비 걱정, 고용 불안, 고령화 문제 등등을 떨치고 살 수 있는 북유럽의 어느 작은 나라들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평화에 대한 문제는 또 어떠한가. 무력으로 지켜내는 평화는 단지 보여지는 평화일 뿐이다. 스위스 같은 나라들은 최소한의 군을 운용하면서도 오랜 기간 동안 평화를 유지 시켜왔다. 지정학적으로나 외교적으로 군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한 우리나라이지만 동서 냉전의 시대가 끝난지 이십여년이고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지도 꽤 됐다. 이제는 국방력 증강이 아닌 좀 더 평화적인 방법으로 평화를 이루어 낼 노력을 해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비무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군비만 축소된다 하더라도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질 한번 상상해보자 그나마 남아 있는 군대에서는 병장 쫄병 할 것 없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마음이 바탕을 이룬다고 하자. 무차별 총기를 난사하던 김일병 같은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철지난 F-15를 들여오기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붓는 대신 사회복지, 교육부문에 예산 편성이 이루어져도 좋겠다. 우리 아이들은 더 이상 경쟁교육, 사교육에 시달리지 않고 부모들은 학비 걱정을 덜어 낼 수 있다. 비정규직, 노인 문제 등도 점차 개선되어 질 것이다.
강의석 퍼포먼스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비무장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서로가 노력하자는 거다. 군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겠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그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더 비무장을 위한 노력에 힘을 기울여야 함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안타깝게도 그는 군대를 깡그리 없애기 위해 나서고있습니다. 현실이고 나발이고..
이 글 내용을 강의석씨가 본다면, "저는 모든 군대를 부정합니다. 글쓰신 분은 제 퍼포먼스를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라는거죠.


시엠립 시내와 반데이스레이는 꽤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을 하지 않으면 여정을 맞추기가 힘이 든다. 또한, 이곳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톡톡 드라이버들이 요금을 올려받는 곳이다. 28$를 요구하기에 20$로 합의를 보고 아침 햇살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시내를 가로질러가기 때문에 하루의 시작을 맞는 시엠립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이들의 주 교통수단인데, 일터로 나가는 그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해 보인다.
꽤 긴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제법 도시 느낌에 배어나는 시엠립 시내의 모습에서부터, 언덕 하나 없는 넓은 평원의 모습과 캄보디아의 시골마을의 모습 등을 가는 길에 모두 볼 수 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달려서 도착한 반데이스레이. 일찍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많은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지나가는 가이드의 말을 얼핏 들으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일이 흔치는 않다고 한다.
반데이스레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그 명성답게 우아함과 섬세함을 자랑하는데, 왕권에 의해서 지어진 사원이 아니므로 건축가의 개인적 예술 취향이 많이 녹아 있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앙코르의 다른 유적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우선 그 크기인데, 책을 통해 '아담하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작았다. 그리고 굉장히 화려하다. 린텔 뿐만 아니라 곳곳의 조각은 이삼 중의 깊이로 조각되어 있는데, 붉은 사암의 장밋빛이 더해져 그 화려함이 배가 된다. 아침 일찍 와서 볼 게 아니라 석양이 지는 저녁에 와서 본다면 붉은빛의 향연이 가득할 듯했다.
관람로는 내벽의 회랑으로만 나 있는데, 훼손이 심해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게 막아놓았다. 이번 여행 동안 가장 기대하던 장소 중에 한 곳이었는데, 인파에 휩쓸려 다니다 보니 기대만큼의 감동을 얻지는 못했다. 해자 근처에 잠시 앉아 그 아름다움에 작별을 고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벌써 태양빛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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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데이삼레
다시 시엠립으로 돌밋가서 점심을 먹기에는 시간과 거리가 여의치 않기 때문에, 우리의 젠틀한 톡톡 드라이버인 소이에게 시엠립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소이는 앙코르 톰 근처의 한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반데이삼레를 꼭 들려보라고 한다. 여행을 계획할 때는 몰랐던 곳인데 가는 길에 있다고 하니 들리기로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적인지 아니면 우리만 모르는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사원 입구는 한산했고 관광객들이 아무도 없다. 굉장히 높은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런 규모의 외벽을 앙코르 유적 군에서 처음 보는 것이라 그 위용이 대단하게 다가온다.
꽤 넓은 구조에다가 조밀함이 더해져 신비함이 가득 묻어난다. 사암의 무게감과 더할 나위 없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반데이스레이와는 달리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하고, 나를 위해 기다려온 사원인 듯하다. 나가로 조각된 난간들은 온통 사원을 휘감고 있으며, 공격적인 부조와 미로 같은 구조는 사원의 묘한 분위기를 한껏 살려 준다.
나는 오히려 반데이스레이보다 이곳 반데이삼레에서 더 큰 감동을 하였다. 이곳은 앙코르 유적 군에 대한 나의 기대감(신비롭고, 거대하고, 압도적일 것이라는)을 최초로 만족 시켜준 사원이다.

소이가 데려간 레스토랑은 캄보디아 전통 가옥 형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자리는 대부분 서양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아쟁 소리가 들려온다. 현지 관광가이드인듯한 사람이 자신의 손님을 위해 즉석에서 우주하고 있는듯했다. 밝고 경쾌한 멜로디가 입맛을 계속 돋우고 있었으나, 음식은 빨리 나오지 않고 애만 태우고 있다.
겨우 기다려 음식이 나왔으나, 주문한 것과는 다른 것이 아닌가! 종업원을 불러 다시 갖다 달라 하니 이번에는 금방 새 음식이 나왔다. 앙코르 비어를 들고 건배!

앙코르 유적 군들이 발견될 당시 유적들은 마치 폐허와 같았을 것이다. 이것들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을까? 현재와 같은 상태로 유적들을 복원한 것도 굉장히 경이롭고 훌륭한 일이지만, 이들이 타프놈을 발견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기로 한 것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결정인듯하다.
이곳의 동쪽 관문은 사진에서만 보아오던 거대한 앙코르의 두상 조각이 처음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문을 지나 타프놈 내부로 들어가면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폐허가 된 그대로인 채 보존되어 있고, 통행로가 일방적으로 나 있어 사원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지만, 이제껏 다녀온 다른 유적지들과는 구조가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다. 마치 얽히고설킨 미로의 내부로 들어가는 듯하다. 코너 한편을 돌 때마다, 인간의 처지에서 보기에는 더없이 무시무시한 '자연으로의 회귀'가 그 모습을 나타낸다.
문명과 자연 사이의 정의할 수 없는 경계가 뚜렷이 남아 있는 이곳은, 앙코르 유적을 향한 신비로운 동경에 마침표를 찍을 장소로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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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의 조각상
시엠립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겨우 한 것은 항공권 예약과 호텔 예약, 그리고 이곳에 머무르는 나흘 동안 답사할 앙코르와트 유적지에 대한 사전 지식을 알아보는 게 고작이었다. 미리 정해놓은 타이트한 일정은 오히려 그것에 얽매여 여행의 또 다른 매력들을 놓치기 쉽상이다.
항공권은 여행사를 통해서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호텔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을 했다. 경비도 아끼고, 많은 여행객과 함께하는 분위기를 느끼고자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를 계획이었으나 혼자 가는 여행이 아니었기에 작은 규모의 호텔을 예약하기로 했다. 그래서 예약한 곳이 앙코르 스타 호텔이다. 시내 중심부에 있기 때문에 어디든 쉽게 갈 수 있고, 무엇보다도 올드 마켓 old market이 가까워 밤에는 펍 스트리트 pub street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며 여독을 풀기에 안성맞춤인 호텔이었다. 부킹닷컴(http://booking.com)에서 그 위치(부킹닷컴에서는 구글 어스를 통해 호텔의 위치를 위성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와 숙박비를 알아보고서 바로 예약을 했다. 해외 호텔 예약을 대행해주는 한국의 여러 사이트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했다. 1박에 32$. 저렴한 가격이 미심쩍어 호텔에 확인 메일을 보내니 다음 날 기다리고 있겠다는 답신이 왔다.
공항을 나오자 톡톡 드라이버들이 다가온다. 호텔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톡톡 드라이버들은 기본적인 영어도 곧잘 해서 어렵지 않게 예약해 두었던 호텔까지 갈 수 있었다. 드라이버는 10$의 가격을 제시했지만 우리는 5$에 탑승했다. 시엠립에서 가격협상은 기본이다. 시엠립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돈을 지불할때 가격협상을 하지 않으면 뭔가가 좀 섭섭할 때도 있다.
호텔로 향하는 길에는 온갖 게스트하우스들과 식당들이 즐비해 있다. 한국어로 된 간판들이 아주 많이 보여 외지로 나온 흥이 가셨다. 드라이버는 호텔 앞에 우리를 내려다 주고, 내일 온종일 톡톡을 빌린다면 20$에 드라이빙을 해 주겠다고 한다. '하핫 12$ OK?'

호텔 내부
시내 지도를 보며 죽 걸어가다가 '레드피아노 red piano'가 보이고 길을 따라 술집들과 레스토랑들이 즐비해 있는 모습이 보이면 이곳이 펍 스트리트임을 알게 된다. 여행자들의 천국이다. 매일 밤 펼쳐지는 파티의 향연이다. 낮 동안의 여독을 풀려고 맥주 한잔하는 사람들, 이성을 꾀기 위해 꽃단장 한 사람들, 여행 정보를 얻으려 만나는 사람들, 떠나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마주 앉은 사람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구경하려고 나온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분위기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매우 매력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거리이다.

본격적인 답사 준비를 끝마치고 밖으로 나서니 톡톡 드라이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톡톡이 고장 났다며 다른 기사를 데리고 왔다. 이 친구 이런 식으로 중간 마진을 남겨 먹는 선수인 듯했다. 어찌할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일단 톡톡에 올라탔다. 기분도 살짝 상했는데 서비스마저 엉망이라면 오늘 밤 펍 스트리트에서 다른 톡톡을 구할 생각이었으나 드라이버는 나이도 좀 있고 순하고 친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드라이빙 솜씨가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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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아코

사원 입구에 가냘픈 원주민 여자애가 둘리님에게 풀꽃 반지를 끼워주며 돈을 요구한다. 마음 약한 둘리님이 가지고 있던 리엘(캄보디아 화폐단위)을 다 꺼내어 건네줬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야'하면서도 측은한 마음에 돈을 건네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인간적인 정을 느꼈다.
사원을 지키는 사자상, 누군가를 기다리며 다소곳이 앉아 있는 닌다상, 탑 문의 린텔과 가문, 그리고 이를 지키는 남신과 여신상 등 여기에 서 있는 탑에 쓰인 건축 양식이 이후 모든 앙코르 유적에서 보인다.
린텔의 조각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그 빛깔이 곱기 때문에 쉽게 눈을 뗄 수가 없다. 도올은 이 린텔에서 섹슈얼리티를 끄집어 냈으나, 나는 형식과 균형의 미를 맞추려고 관념적인 신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최상의 조합을 찾아낸 크메르인들의 탁월한 미적 감각과 건축 감각에 대한 경이로움이 먼저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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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콩
프레아코 바로 옆에 있다. 피라미드식 사원의 모습이 최초로 보이는 곳이다. 앙코르 와트의 원형이 되는 곳이다. 나가의 호위를 받으며 양옆으로 펼쳐진 신도를 지나 우뚝 솟아있는 피라미드는 위용이 엄청났다.
내벽으로 들어가면 양옆에 도서관이 있고, 주변으로 프레이코에서 보았던 탑들이 서 있다. 피라미드는 올라갈 수 있으며, 피라미드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또한 장관이다. 어두운 사암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성적이면서도 무거운 느낌이 물씬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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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스트리트로 돌아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몬순기후의 영향으로 한껏 쏟아지는 소나기를 만났다. 우리는 톡톡에서 그 비를 맞기로 했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그냥 맞을 수가 없었다. 드라이버가 순식간에 톡톡을 개조시키니 더는 비를 맞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점심을 먹으려 들어간 레스토랑은 '드래곤 수프 dragon soup'. 카레와 치킨 요리를 주문했는데 입맛에 맞았다. 식사를 마치고 옆에 있는 올드마켓에 들렸다. 고향에 있는 오일시장에 온듯한 느낌이었다. 생선과 고기의 비린내가 코를 진동하는 한쪽 편을 지나고 나니, 옷이나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해 있다. 둘리님은 핸드메이드로 만들었다는 나시티의 무늬가 예뻐서 18$의 가격을 깎아 10$에 하나를 샀다. 마침 혼자 여행 온듯한 한국의 한 여성 여행객이 둘리님이 산 티셔츠를 보고 얼마에 샀느냐 물어 오길래 10$에 샀다 그러니 굉장히 놀라면서 비싸게 샀다는 표정을 짓는다. 도대체 시엠립에서는 얼마까지 깎아야 하는 것인지 순간 좌절감이 밀려왔다. 나는 앙코르 비어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1$ 반에 하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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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바켕

프놈바켕은 시엠립에서 가장 높다지만 높이가 겨우 70미터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의 기준으로 그런 것이다. 당시의 크메르인 들에게는 그 어떤 높은 산보다도 높은 산이 바로 프놈바켕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곳 정상에 이렇게 신성한 장소를 만들어 놓을 필요가 없지 않았겠는가?
원래 프놈바켕을 오르는 길은 너무나 가파르므로 지금은 막혀 있고 원래의 길 오른쪽으로 완만한 길을 만들어 놓았다. 왼편은 코끼리를 타고 오르는 길이 나 있다. 원래의 길 양쪽으로 서 있는 사자상이 굉장히 늠름하다. 프레아코나 바콩에서 보아온 사자상은 앙증맞고 낮은 것에 비하면 이곳의 사자상은 몸매가 길쭉하게 잘빠져 있고 크다.
정상에 오르면 프놈바켕 사원이 바로 보인다. 계단이 매우 높고 좁아 오르기가 쉽지가 않다. 앙코르 유적지들의 계단은 대체로 가파른데 신들이 오르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다. 정상에 서면 시엠립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인다. 머지않은 곳에 앙코르 와트의 첨탑도 보인다.
내려오는 길은 코끼리가 다니는 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길 자체도 코끼리 하나가 지나갈 만큼 좁은데, 내려가는 도중에 코끼리를 만나 옆으로 비켜서면 바로 눈앞에서 코끼리가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놈바켕 앞에 즐비해 있는 노점상에 앉아 코코아 하나를 시켰다. 커다란 얼음 통 속에서 하나를 꺼내 바로 구멍을 내어 내왔는데, 생각보다는 시원하지도 않고 달콤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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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사라 댄스
호텔로 돌아와 내리니, 드라이버가 압사라 댄스를 보지 않겠느냐 물어온다. 이곳에서는 저녁 뷔페와 압사라 댄스를 함께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많다. 마침 호텔 바로 앞에 그런 레스토랑이 있어서 저곳에서 보겠다 하니 예약을 해 주겠다고 한다. 가격은 12$. 호텔 앞이 레스토랑이니 같이 가서 예약하자고 했다. 직접 가서 예약하니 자리를 직접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았다. 레스토랑 직원이 티켓을 끊어 주며 10$를 부르려고 하자 드라이버가 직원을 향에 현지어로 샤바샤바 하더니 12$로 다시 가격을 부른다. 드라이버와 레스토랑 사이 모종의 관계가 있는 듯하다. 아마 2$ 정도는 소개비 명목으로 드라이버들이 가져가는 것 같았다.
내일은 반디스레이를 가겠다고 하니 28$를 요구한다. 20$에 가격을 합의하고 내일 다시 만나기로 했다.
압사라 댄스를 보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호텔 수영장에서 잠깐 피로를 식힌 뒤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뷔페식사가 제공되는데 현지식들이 많이 나왔다. 소스에 찍어 먹는 찰떡 비슷한 음식이 굉장히 맛있었다. 음료는 따로 계산을 해야 한다. 무대에서는 현지인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춤과, 라마야나 이야기의 원숭이 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압사라 댄스가 공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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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옛날 크메르 미인들이 벗은 가슴에 얇은 비단 치마를 입고 추었을 압사라 댄스를 생각하자니 댄서의 절제된 교태가 보는 이들의 애간장을 태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맥주를 한잔 더 하려 펍스트리트로 갔다. '레드 피아노' 앞에 '인 터치 in touch'로 가 자리를 잡았다. 9시부터 라이브를 하는데 온갖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이 있으니 그날 손님들의 국적을 잘 살펴 번갈아 가며 그 나라의 노래를 부른다. '사랑해 당신을'이란 노래가 가장 먼저 나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손님들이 한국 단체 관광객인 듯했다.
그렇게 둘째 날의 일정이 저물어 갔다.

모두가 촛불집회의 본질을 무시하고 촛불집회의 행태에 초점을 맞추려는 프레임 짜기이다.
평화로운 집회를 유지하던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무엇인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뼈져리는 반성한답시고 고개를 숙였던 자, 결국 국민을 기만하지 않았던가. 재협상에 대한 노력은 전혀 없이 추가협상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카드를 들이밀고는 자화자찬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추가협상에 대한 국민적 평가와 여론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놓고선 이제 와 정부를 믿고 대통령을 믿으라니, 그 누가 자리를 박차고 나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촛불집회가 도로로 진출할 때에는, 이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불합리성을 성토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무능함과 오만함을 성토하고자 한 것이다.
폴리스라인은 또 어떠한가?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려 한 사람들은 대부분 당신들이 평화스럽다고 여겼던 초창기 촛불집회 참가자들이었다. 진정 그들이 이같이 도로를 점거하고 코 앞에서 경찰들과 대치하는 집회를 경험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폴리스라인이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잘 모르는 보통 시민들이 대부분이다. 그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이명박 정부에게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간절함만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폴리스라인은, 정부와 국민 사이의 소통을 맞는 장벽이자 곧 공권력 차원에서 시민들에게 가하는 암묵적인 폭력일 뿐이다.
지난 주말 경찰의 무시무시한 진압이 의도적이었는지 도발적이었는지 그 속내는 모르겠다. 도로를 점거했다는 이유가, 또 당신들만의 성역인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려 했다는 이유가 과연 쇠 파이프에 두들겨 맞고, 방패에 찍혀 피를 흘려야 될 일인가? 무차별적으로 연행되는 그들에게 서슬 퍼런 법의 잣대를 들이밀며 심판하고자 하는 이 정부는 과연 민주주의를 천명할 수가 있단 말인가?
역사는 반드시 오늘을 재기록 할 것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그랬고, 6·10 민주 항쟁이 그랬다. 폭도로 매도당하고 빨갱이로 매도당했지만, 그 본질만은 끝내 살아남아 이제 역사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총질해댔던 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짧은 식견으로 오늘 촛불집회의 본질을 흐리려는 잘못을 범하지 마라. 결국은 허공을 향해 쏘아 올린 화살촉이 되어 당신에게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정부와 보수진영은 이들에게 폭도라는 딱지를 붙이고 촛불집회를 불법·폭력 시위라고 외쳐대고 있습니다. 과연 촛불집회 참여자들은 폭도이고, 촛불집회는 불법·폭력 시위일까요?
법치국가로써, 대한민국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헌법입니다. 그중에서도 헌법 제1조는 헌법의 모든 생각을 담아낸 가장 중요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음 직한 이 조항은 2항으로 구성되어 있고, 내용은 바로 이렇습니다.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
또한, 헌법 제21조 1항과 2항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1.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2.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이 조항만 따지고 본다면 촛불집회는 당국의 허가 사항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에 따른 기본권에 입각한 행동임이 틀림없습니다.
다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는데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손상, 파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해서는 안 된다.'라는 조항입니다. 이 조항과 더불어 일출 전, 일몰 후 옥외 집회나 시위, 허가받지 않은 시위에 대한 금지를 조항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정부와 보수진영에서 촛불집회를 불법·폭력 시위라 규정하는데 직접적인 근거가 되는 법률 조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처음부터 불법·폭력 시위대라고 불리지는 않았습니다. 교복을 입고 나온 청소년들의 창의적이고 위트 넘치는 피켓과 퍼포먼스, 가족의 건강을 바라는 시민들의 작은 촛불, 그리고 그 위로 울려 퍼지던 '아침이슬'이 촛불집회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어땠습니까? 이들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이들의 바람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는 대신에 기회만 엿보는 쥐새끼처럼 기다리다가 결국 추가 협상이라는 졸속 행정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정부에게 더 큰 목소리를 들려주고자 더 많은 사람이 모였고, 거리행진을 하고, 급기야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고 정권퇴진을 외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전경버스를 들이밀어 행진을 막아버리고, 물대포와 소화기를 직사하며 방패와 곤봉과 군홧발로 온몸을 내리찍는 정부를 두고도, 시민들이 평화를 외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민주시민들을 폭도로 만든 것은 다름이 아닌 이명박 당신입니다.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촛불집회를 법률로써 불법·폭력 집회라 규정하고 제한할 수 있겠지만,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이를 지지하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음을 정부는 다시 한번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전국에서 18대 총선에 뛰어든 후보는 모두 703명 입니다. 이들 중 의정활동계획서를 작성한 후보자는 183명 입니다. 당사자들은 공천이 늦어졌다는 변명입니다만, 후보들 면면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내로라 하는 후보들 역시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안상수, 정몽준, 이재오, 남경필, 정두언, 홍정욱 후보의 이름도 여기 올라 있습니다. 해마다 선거철 만 되면 정책부재를 질타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이슈도 없고 화두도 없습니다. 여기에는 선관위가 단단히 한 몫을 했습니다. 시민사회가 등록금을 이슈로 꺼내려 하면 ‘선거관리법 위반’이라고 제동을 걸고 나섰고, 인터넷 실명제와 네티즌 기소로 인터넷에 재갈을 불렸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사상 최저의 투표율에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결국 자업자득 입니다. 정치참여를 보장하고 독려하지는 못할망정 네티즌의 눈과 귀를 가려놓고 도장만 찍으라는 식의 발상은 정치발전에 오히려 해가 될 따름입니다.
사상 최악의 투표율 46%
결국 과반의 투표율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투표율 저하는 단순하게 참여율이 낮아졌다는 것으로 풀이돼서는 안됩니다. 선거의 꽃이라고 불리는 국회의원 선거에서조차 정치 냉소가 팽배한 것은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권자들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외면 받게 된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정치권에 있습니다. 쟁점도, 이슈도, 화두도, 정책도 실종된 선거를 만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유권자는 주권을 행사하는 사람이지 ‘투표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유권자는 후보자에 대해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후보자는 유권자에게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후보자는 자신의 의정활동에 대한 계획을 설명하고, 지역발전과 정치비전에 대한 설명과 공약을 내 세워야 합니다. 그럴만한 공간이 없다면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유권자에게 조금이라도 다가서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절반의 지지조차 받지 못한 국회
18대 총선은 결국 과반의 지지도 받지 못한 국회로 낙인 찍히게 됐습니다. 국민에게 버림받은 국회. 그 오명을 씻기 위해서라도 국민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야 합니다. 재갈을 물릴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확성기를 보급해야 하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를 애정과 관심으로 돌려 놓아야 합니다.
소통하지 않는 정치인과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나라에 미래는 없습니다. 공룡은 가는 곳 마다 자신의 무게만큼 크고 깊은 발자국을 남길 것이고, 발자국의 깊이 만큼 신음하는 국민은 늘어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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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0 17:24 [수정/삭제] [답글]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는 노력이 바로 개발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2010/07/20 17:25 [수정/삭제] [답글]
http://www.eluxurys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