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워홀 - 예술의 권위에 대한 도전

Posted at 2007/04/03 14:19 // in 키슈페이퍼 // by 키슈
앤디워홀. 그가 주도한 팝아트가 현대 문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고귀함의 상징 처럼만 여겨 지던 미술 작품들에 반기를 드는것 처럼,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위선을 비웃는 것 처럼, 그의 작품은 지극히 단순하고 공격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가 활동하던 60년대는 미디어 쇼크가 태동된 시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던 대중들은, 상업과 자본이 미디어와 결합하는 시점에서 끝내 미디어의 피동자가 되고 만다.
어쩌면 워홀은 이같은 미디어와 상업주의를 맹점보다는, 새로운 환경이 주는 예술적 가능성을 남들보다 먼저 파악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FACTORY에서 생산된 작품들에는, 그 배경이 통조림과 사과 박스 같은 자본의 산물이 되기도 하고, 대량생산을 해 놓은듯 의미없이 펼쳐놓은 똑같은 작품들이 보여지기도 한다.
상업미술이라 함은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미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업을 미술의 연장선 상에서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비상업미술보다는 좀더 광범위한 주제와 도구를 가지고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바로 미술의 범위를 확대 시킬 수 있다.

워홀은 누구보다도 이것을 잘 이용했다. 변화의 굴곡이 큰 시대의 한 가운데서,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도구로서 상업적인 미디어를 택한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미디어는 하나의 도구이자 더불어, 작품의 대상이기도하다. 이런 사실은 도구를 이용해 도구를 표현하면서 도구가 갖고 있는 맹점을 도출시키는 천재성이 돋보이는 작품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블루재키에서 보듯이, 무의미한듯 보이는 한 여성의 나열은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작품에 내재된 의미를 찾으려는 의도를 빼앗아가 버리고 만다. 미디어를 통한 대량 노출이 대중들에게 필요한 능동적 감정 교류를 막아버리는 우화를 표현하는 것이다.
캠벨스프 같은 작품에서 오히려 그는 상업성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듯이 보인다. 워홀은 통조림 -이 보다 대중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디자인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표현한다. 상업적인 경로를 통해 접하게 되는 광고 따위도 충분히 훌륭할 수 있으며, 충분히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작품이 언제 부터 예술로써의 위치에 있게 되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대가 지나 높히 평가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당시에는 그리 큰 가치를 지니고 있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대중들의 입에 화자되는 작품이란 여러가지 요소들이 결합되어야 탄생할 수 있다. 단지 작품성 만으로는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워홀의 작품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특이성 때문에 많이 거론되고는 있지만, 그 예술적 가치는 아직 논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노력했으며 그것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워홀의 작품이 대중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잘 파악해서 해결해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고상하고 위선적인 예술 작품에서 탈피하여,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려는 통로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워홀의 작품(혹은 훠홀의 영향을 받은 작품) 주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예술 작품이 옆에 있으면서도 예술 작품인지 모르거 살아가는 모습은, 그 만큼 예술이 생활에 깊숙히 침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워홀은 이를 위해 예술의 정의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한 것이다.
2007/04/03 14:19 2007/04/0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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