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소년을 쳐다보는 시선에는 냉소가 가득하다.
이 친구의 모습이 동구를 만나고 나서 잠깐 스쳐 지나갔다. 가지고 있는 고민이 유별나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 취급을 받는 사람들... 이 글은 <천하장사 마돈나>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물음, 과연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정당한가에 대한 내용이다.
소수자와 다수자의 구분은 비정상적인 것과 정상적인 것의 구분이 아닌 많고 적음의 구분일 뿐이다. 그렇지만 소수자를 바라보는 다수자의 시선에는 멸시와 조롱이 가득하다. 소수자들을 아직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으로 바라 보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행동양식에 안주해 있는 것이 정당한 무기가 되어버린 양반들에겐, 기준을 벗어나는 행위는 사회악이다.
이런 다수의 폭력에 묻혀 버린 소수자들을 바라볼 때면, 으례 그들의 삶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임을 간과해 버린다. 다수가 정해 놓은 행동양식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그들의 특이한 고민을 남몰래 아파하고, 사회의 냉담함에 더 크게 아파하고 좌절해 버릴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그늘진 곳의 구석에서 세상의 변화를 기다리며 움츠리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것은 오해였다.
여전히 세상은 그들의 고민에 대한 공론을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소수자를 바라보는 다수자의 관점에 편협함을 가중시킨다. 소소한 인간의 감상을 논한다는 어느 다큐멘터리에서도, 소수자의 인권신장이라는 거창한 명제를 풀어놓을 뿐이다. 결국 가식적인 결론을 쏟아놓고는, 그들의 안타까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머리속에 멤돌게 한다. 소수자들에 대한 오해가 점점 쌓여가면, 가증한 동정심마저 쌓여간다. 그들의 생존의 문제는 아랑곳 하지 않고 선택의 문제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천하장사 마돈나>에 나오는 소수자들의 건강한 웃음속에서 나는,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오해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그 미안함 고개를 떨궜다. 어쩌면 동구의 말처럼 그들은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소수자의 특이한 고민을 함께 아파하거나 이해해줄 수는 보편적인 고민의 차원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특이성을 그들의 기준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들도 자신과 세상을 긍정하고 그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똑같은 "다수자"이다. 단지, 기준이 좀 다를 뿐이다.
A Dream You Dream Together Is Reality!
2006/09/16 20:22 [수정/삭제] [답글]
ㄴㅏ 도 어제 천하장사 마돈나 봤는데~! 대전에 영화를 무지 좋아하는 여자후배가 있는데~!
같이 꼭 보러 가자고 해서 ~! 감상했음~! 내게도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남녀의 이중성이 있는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