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출발한 KTX는 한시간 반만에 동대구역에 도착 했고, 우리는 그곳에서 바로 주행 통근열차로 갈아탔다. 시골 어른들의 정겨움이 열차칸에 묻어나는 그곳은 경주를 느끼는 첫번째 장소로 기억되기 충분했다.
경주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경주에 사는 사람이다. 살아가는 곳이 터전인 사람들에게는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들이 있다. D는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는 듯, 열차에서 만난 할머니와 거리낌없이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답사를 준비하며 책을 통해 얻어낸 지식과는 비교도 안될 교감을 느꼈으리라.
그렇게 한시간을 달려 도착한 경주역.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다르게 무척 무더웠다.
신들의 안식처
경주 시내 지도를 펼쳐 대릉원의 위치를 확인했다. 경주역과는 걸어가도 충분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가는 길에 즐비해 있는 해장국 골목에서 점심을 마치고, 돌담길을 따라 고분들이 우뚝 우뚝 솟아있는 대릉원에 도착했다. 천년도 넘는 시간동안 잠들어 있는 왕들과 오늘을 깨어있는 우리들의 만남이 신비하기만 했다.
D와 나는 왜 왕들의 무덤들이 평지에 있을까에 대해서 잠깐 고민을 했다. 아마도 풍수지리가 널리 유행하던 때가 아니니 굳이 무덤 터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리라. D는 신라 왕들이 죽어서도 백성곁에 있고 싶어 일부러 성과 가까운 평지에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멋진 해석에 경배를!
이 대릉원에 즐비해 있는 고분들의 내부를 보고 싶다면 천마총을 향하면 된다.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여 시신을 보존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게 냇돌을 촘촘히 쌓아올린 이 덧널무덤에는 신라 왕들의 생활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여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붙히게 된데에는, 이곳에서 하늘을 달리는 말이 그려진 그림이 출토되었기 때문인데 이 그림은, 그 섬세함이나 사실적인 묘사는 좀 떨어지더라도 오묘한 색감과 주변 무늬가 신비감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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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함에 묻어나는 우아함
대릉원에서 나와 오른편 들판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첨성대가 눈에 들어온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고 하지만 그 쓰임새에 있어서는 오늘날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나는 첨성대를 처음 봤는데, 투박하게 쌓여 올려진 벽돌에서 우아함이 한껏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조금 더 크고 상당히 안정적이 었는데, 이는 사각형과 원형이 적절히 조화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듯 했다.
첨성대는 잘 아는 것 처럼 과학적인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쓰여진 벽돌은 모두 361개 하고도 절반이며 음력으로 따진 일년의 날수와 같다. 총 27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맨위의 네모모양의 돌판까지 합치면 28단. 이것은 전통적인 동양의 별자리 28수를 나타내고, 가운데 출입문을 기준으로 아래와 위로 12단씩 나뉘어져 있는데, 이것은 1년 12달 24절기를 나타낸다고 한다.
꼭대기의 속이 빈 돌판은 동서남북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기에 가져간 나침반을 놓고 확인을 해봤는데, 역시 책에 나온 내용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함께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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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으로 가려면 시내까지 걸어나가 버스를 타야 한다기에 근처에서 택시를 잡았다. 날씨가 무더워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삼릉 앞에서 우리를 내려준 택시는 오천원 정도의 요금을 받고 시내로 돌아갔다. 오래된 가게에서 얼음물 두 통을 사 가방에 넣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각오를 다졌다. 이곳 남산 답사길은 워낙 종류가 많아서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책에서 권장하길, 좀더 많은 유적들을 보고 싶다면 삼릉을 통해 올라가는 길이 최선이라고 했다.
이국적으로 펼쳐 있는 소나무 숲을 지나 잠시만 오르면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세 왕릉이 나란히 나타난다. 이것이 삼릉인데, 삼릉을 지나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 보면 처음으로 보이는 불상이 있다. 이 불상은 목과 손이 없이 가부좌를 하고 있는 불상이다. 원래 계곡에 묻혀 있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는데, 부처의 전체적인 윤곽은 부드럽게 조각해 놓고 왼쪽 어깨로 부터 흘러내리는 옷주름과 매듭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조각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불상에서는 의연함이 묻어나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데 그 얼굴 모습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불상을 앞에 두고 고개를 약간 왼쪽 위로 돌리면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이 바로 한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는 이 조각상은 오른손을 가슴에 두고 왼손에는 병을 들고 있다. 엷은 미소가 온화하게 보이는데 입술에는 아직도 약간 붉은 기가 남아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이는 자연암석의 붉은 색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라 한다.
다시 계곡을 때라 오르면 마애선각육존불상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이 지표를 따라 오르면 커다란 암벽을 만나게 되는데 이 암벽에 여섯명의 불상이 선각되어져 있다. 정으로 쪼아서 새겼음직한데도 전혀 투박하지 않고 오히려 한지에다 붓으로 그려놓은듯 자연스럽다. 게다가 암벽면의 울퉁불퉁함을 전혀 깍지 않고 그대로 그림을 그려 넣어 그 자연스러움이 한층 더 빛이 났다. 8세기 후반 작품이라고 책에 나와 있는데, 천년이나 넘은 작품을 눈앞에 두고 있노라니, 묘한 기분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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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내리쬐는 태양빛을 견디지 못하고 남산을 내려와야 했다. 더위도 더위였지만, 생각보다는 험한 등반길에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등반 준비를 하고 꼭 한번 다시 올라보기로 하고 포석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삼릉에서 시내쪽으로 10분여를 걸어 내려오다 보면 오른편에 포석정을 볼 수 있다. 자그마한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 연인들이 발길이 잦기도 한 이곳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그리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신라 멸망의 그날에 경애왕이 신하와 궁녀들과 함께 어울렸던 곳이라 하여 그 비탄함을 한껏 받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물을 흘리고 잔을 띄우던 물길만이 남아 있다.
그 규모나 주위 환경을 봤을때는 역사의 기록처럼 환락의 장소로 이용되진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왕과 신하가 궁안의 긴장된 분위기를 벗어나 풍류를 벗삼아 이야기를 하기 위한 귀중한 장소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포석정을 나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향하려면 또 다시 버스로 시내에 들어간 후 다른 버스를 갈아타야 된다고 한다. 하지만 버스가 잘 다니지 않기 때문에 택시가 보이면 택시를 잡는게 좋다. 박물관까지의 요금은 삼천원정도. 5시까지 입장이 가능하고 6시가 폐관된다 하기에 서둘러 도착을 했지만, 하절기 토요일에는 9시까지 개장을 한단다. 게다가 오후 6시부터 입장하는 사람들에겐 관람료가 무료라고 한다.
경주 지역의 선사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2,5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에밀레종이라 불리우는 성덕대왕 신종이 전시되어 있다. D가 말하길 예전에 자기가 여기 왔을때는 직접 종을 쳐서 그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했으나, 지금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종을 울리지는 않는다. 대신 녹음된 종소리가 매시각 울리는데, 아무래도 그 감흥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이 종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꼭대기에 종을 달기 위한 용뉴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음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음관이 있는데, 이는 중국 종이나 일본 종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 나라 종의 특성이다.
종의 몸통에는 비천상과 함께 성덕대왕의 명문 1만여자가 조각되어 있다. 그 내용은 "신종이 만들어지니 그 모습은 산처럼 우뚝하고 그 소리는 용의 읊조림 같아 위로는 지상의 끝까지 다하고, 밑으로는 땅속까지 스며들어 보는 자는 신기함을 느낄것이요, 소리를 듣는 자는 복을 받으리라"라고 씌어 있어, 그 소리를 직접 듣지 못한 아쉬움을 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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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ream You Dream Together Is Reality!
2006/07/18 11:59 [수정/삭제] [답글]
고등학교때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적이 있던 경주..
기억이라고는 술에 취해 버스 뒤에 쩔어있었던 기억만이..
다시 보니 너무나 새롭군요.. 글도 너무 멋지고요.. ^^
글을 읽고나니.. 다시 한번 짧은 뒤를 돌아 보게 되는데요..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예전의 나와 현재의 나라.. 아 난 왜 그랬을까? ^^
2006/07/18 16:07 [수정/삭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 선배인 Y는 항상 말을 하곤 합니다. 시간이 흘러 지나온 것을 다시 돌아 볼때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만큼 성숙해 진게 아닐까요?
2006/07/20 18:28 [수정/삭제] [답글]
아.. 동의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
그런데.. 문득 잃어버려서 보지 못하는 것은 없을까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무언가가 공허해 지는 기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