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에 관한 단상

Posted at 2006/05/30 14:21 // in 키슈페이퍼 // by 키슈
97년 말... 이때는 내가 입영통지서를 받아들고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던때다. 지금 돌이켜보면 26개월이라는 시간이 유수같이 흘러간듯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주위의 모든 친근함과 억지로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못견디게 답답했다.

억울하다고 해야할까..? 가슴속으로 들이붓는 소주잔도, 아쉬움이 묻어나는 친구들의 위로도 그 무엇하나 위안이 되지 못하고 그렇게 나는 떠나기 위해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TV에서 흘러나오는 가슴을 울리는 노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SES의 "I'm your girl"!!! 금방이라도 화면에서 뛰어나와 "당신의 소녀가 되어주겠어요"하며 외쳐줄것만같은 그녀들의 입술과  어둡게만 느껴지던 세상에 한줄기 빛을 내뿜어 줄듯한 똘망한 눈망울에, 억센 마음을 먹고 결심한 입대가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꾸로 쳐박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는 법. 상병이 꺾이자 내무실에 있는 오디오는 나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반입이 어려운 카세트 테잎을 겨우 겨우 구해다가 밤이고 낮이고 음악을 듣는 그 자유로움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직접 느끼고 싶다면 군대만큼 좋은 곳도 없을 것이다.

중대에서 유일한 동기인 승열이가 음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만들어 준것이 있었는데 바로 침상밑으로 오디오와 연결시킨 작은 스피커가 그것이다. 취침시간이면 조그맣게 FM을 틀어놓고 둘이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밤디윤아'를 알게된다.

애니메이션에 남다른 조예가 있는 승열이는 현실의 부조리를  감각적으로 집어내는 김윤아의 화술에 매료되었고, SES의 화려함에 질려가던 나는 깊이가 남다른 자우림의 노래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작은 스피커에서 숨죽여 흘러나오던 '미안해 널 미워해'는 내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몇몇 카타르시스의 일부분이 되었고, 김윤아에 대한 환상은 남아있는 군생활만큼 거품에 거품을 더해갔다. 그리고 지금껏 발표되는 자우림과 김윤아의 앨범들을 들으면서 그녀에 대한 환상의 거품이 가시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오늘 자우림의 공연을 직접 보면서 사랑과 음악의 가장 큰 공통점을 하나 찾았다. 바로 화려하게 치장된 겉모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제와서 SES의 노래를 애써 찾아 들으려 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겉모습으로의 SES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우림과 김윤아의 노래는 감정이 이끄는대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표현속에 묻어나는 감정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합일점에 가까워지려 할때 주위의 모든 사사로운 것들은 조용히 제자리를 찾게 된다. 화려한 겉모습만으로는 다다를수 없는 깊이란 바로 이런것이다.
2006/05/30 14:21 2006/05/3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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