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Posted at 2006/04/03 13:05 // in 키슈페이퍼 // by 키슈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한 점 산으로 솟은 탐라.
척박한 자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동체적 전통과
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침략자, 수탈자를 향한 저항 정신이 면면히 흐르는 섬.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제주도민은 자치행정기구인 인민위원회를 설립했다.
제주도의 인민위원회는, 미군정도 인정했듯이, 제주도 전역을 지배한 사실상의 정부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점차 이를 부인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1947년 3월 1일, 제주읍 내에 운집한 3만 도민은
진정한 민족해방을 갈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는 또한 미군정의 남한 민중의 염원을 묵살한,
그럼으로써 실패한, 남한 점령 정책에 대한 항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미군정은 이에 대해 시위를 끝내고 귀가하는 도민을 향한
조준 사격으로 대응했다. 이 결과 6명이 피살, 8명이 부상당했다.
이는 4ㆍ3발발의 커다란 원인으로 작용한다.

제주 도민은 즉각 이 만행에 항의하는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 총파업에는 마을의 구멍가게에서 경찰관까지 참여했다.
이 총파업을 분쇄하기 위해 미군정은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 (서청)과
응원 경찰을 대거 파견하였다. 특히 서청은 무보수로,
불법적인 치안권을 행사하여 도민을 갈취하는 것이 묵인되었으므로
제주 도민에 대해 극심한 공갈과 갈취, 행패를 단행하였다.

미군정은 도처에서 도민에 대한 대검거를 단행하여
3ㆍ1시위 및 총파업 가담 혐의로 2500여명을 체포, 구금하였다.
이후 이들에 대한 고문을 잔혹하게 자행함으로서 3명의 도민을 고문 치사케 했다.

서청의 횡포는 마을 처녀에 대한 겁간으로까지 이어진다.

1948년 4월 3일 밤 1시, 도내 각 지역의 오름마다 일제히 봉화가 오르고
제주도민의 아들, 딸인 500 여 명의 유격대원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유격대원의 초기 공세로 5월 10일 실시된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제주도에서는 끝내 무산되었다. 이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남한에서도
거부되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미군정은 이에 대해 즉각 섬 전체를 피와 살륙의 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도피 입산한 젊은이를 둔 부모들은 그 자식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해야 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후 이 땅 어디에도 대화해의 조치는 없었다.
미군사 고문단의 지시에 따라 정부군과 경찰은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애는 삼광, 삼진 작전으로 도내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하고
3만 여 명의 숱한 인명을 살상하였다. 제주의 절경지들은 학살터로 변해갔다.

국제법에서 엄격히 금지된, 반인륜적 범죄인초토화 작전에 의해
한 가족이 한꺼번에 몰살당하는 일이 수도 없이 발생했다.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사람은 목놓아 울어보기는커녕
소리조차 낼 수 없는 현실과 만나야 했다. 반세기동안.

예로부터 제주도민은 한라산의 정기를 받아 대의와 민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리낌없이 바친 이들을 '장두'라 칭송했다.



그리고 이제 반세기가 흘러...
썪어 문드러진 시체는 아직도 어디선가 거름이 되어가고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좌절했던 어르신들은
자신의 억울함마저 흙속에 묻어버렸다.

역사는 진실을 향해 흘러가고
진실은 억울히 죽어간 그 영혼들을 달래주지만
그대 한줌 바람으로 흩어져간 그 청춘을 서러워하진 말지어다
그대들이 있어 제주가 있고, 그대들이 있어 내가 있도다.

제주 4.3 웹사이트 http://www.cheju43.org/

2006/04/03 13:05 2006/04/0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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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잠들지 않는 남도 from 사람사이에 사람사이다 2006/04/03 17:25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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