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8년 1월 군번이다. 군번 98-76003312!
자대로 편입되어 며칠 안되었을때 창밖을 보고 기지개를 폈다고 그날 밤 화장실에서 맞았다. 사실은 의례 처음 왔으니 군기좀 잡는 답시고 때리겠지 생각을 했는데 이유를 알고 보니 말년 병장이 저쪽 끝에서 자고 있다가 내가 그러는 모습을 봤단다. 결국 그들만의 루트를 따라 이 이야기는 전해 졌고 그 직책도 무시무시한 군기담당 군번의 귀에 이야기가 들어가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사실 기억해 보면 군대 생활은 하루라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중대내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은 고참들 그룹에서 나름대로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곧 이에 맞는 징계가 내려진다. 물론 이 징계라는게 적절한 절차와 합리적 판단에 의해 정해지는것은 아니다. 그냥 수다 떨듯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이러지. "어 그놈이 그랬어? 한번 집합시켜야겠는데..!". 그 후론 일사불란하다.

지금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군대이야기에 대한 사회적 기능은 유머, 친목, 과시, 그리고 동정 등 다양하다. 남자들이 모여있는 술자리에선 단골 안주임에 분명하고 어쩔때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주어진 임무를 책임있게 완수하지 못했다던가, 연장자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이라도 불손하다 치면 곧잘 군대 출신 여부를 빗대어 이야기를 한다. "군대를 안갔다와서 그래.", "군대도 갔다온 사람이 왜 그래?"
비록 농담삼아 이야기 하는 모든 군대 이야기의 기저에는 반드시 상대방에 대한 과시와 무시가 들어가 있다. 결국 군번이란 제대를 했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군대에 대한 비판을 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비판의 대상이 우리가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나간 일에 대해서 관용적이지만 과거의 경험이 다시 반복된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과 반성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과거의 경험에서 잘못된 부분이 앞으로 다가올 경험에서는 좀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이다. 하지만 군대는 다시 다가올 수 없는 경험이다.
또한 군대라는 사회는 너무나도 폐쇄적이다. 즉 이러한 모든 비판들을 수용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더라도 실상 그 모습을 우리가 다시 영위할 수가 없는 사회이다.
이런 이유때문에 군대이야기는 추억이란 이름으로 무마되기 마련이다.

이 영화 '용서받지못한자'는 군대이야기의 사회적 기능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보는이로 하여금 해결책을 마련해 내라고 종용한다. 어떠한 사회 내부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 없이 무조건 통용되는 법칙은 무엇이 잘못된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사회 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제 목소리를 다 할 수 있다. 물론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은 이러한 목소리에 커다란 벽으로 다가올 수 있다. 여기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으라면 무조건적인 비판도 아니오 무조건 적인 수용도 아니다. 특수성이라는 이름으로 무지막지하게 무시당하는, 또한 이러한 비상식적인 법칙이 계속 반복되는 사실에 대해서 군은 분명 합리적인 수용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P.S 윤종빈감독의 시나리오 조작사건에 대해서
예술이라는 순수성 앞에 자신의 치부를 내보일 수 없는 군대도 이해가가지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기에 거짓말을 한 윤종빈 감독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창작을 하기 위한 거짓말때문에 창작품 마저도 거짓말이 되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A Dream You Dream Together Is Reality!
2005/11/18 19:33 [수정/삭제] [답글]
근데 신기한 건 그렇게 악마같았던 사람들, 다 사회에서 만나보면 이상하게 착해져 있더군요. 어찌보면 세계8대 미스테리일지도 몰라요. 말년꼬롬이가 제대 후에 순둥이가 되는 것도. :>
2005/11/19 00:48 [수정/삭제] [답글]
저 역시 시나리오 문제로 인해 잘 만들어진 영화자체가 퇴색되지 않을까 우려가 살포시 들더군요.
2005/11/20 10:04 [수정/삭제] [답글]
저도 이제 다음달이면 제대해요^^ 시간아 얼렁 가라~